[시론담론] 회색지대 전술을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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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일보 2025.01.13.19:34
[시론담론] '회색지대 전술'을 경계해야
비상임 논설위원·호서대학교 교수
2023년 말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하수인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한국에 대한 공세를 더욱 노골화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오물풍선이란 변칙적 도발 행위로 나타났다. 그간 핵과 미사일 등의 무기체계를 통해 역량을 과시하는데 집중하던 북한의 도발이 새로운 양상을 보이면서 '회색지대 전술'이 언론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보통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에서 흑도 백도 아닌 것을 '회색'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회색은 선도 악도 아닌, 합법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용인되기에 애매한 영역을 가르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세상엔 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회색지대에 속하는 행동이나 지역들이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은 맞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도 또한 통제하기도 어렵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모호한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한반도 주변에서 점차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안보차원에서 이런 행위를 '회색지대 전술'이라 하는데 강도 있는 군사적 위협이나 도발을 하면서도 전쟁이 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아슬아슬한 도발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회색지대 전술'은 심리전과 재래식 전쟁 요소를 결합해 상대의 내부적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이고 정치전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저비용으로 사회적 혼란을 극대화할 수 있고 핵심적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비정규전과 테러, 범죄 등이 결정적 역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주체도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나 무장한 민간 어선 등으로 활용하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전술로 평가된다. 특히 현재와 미래 안보환경에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촉발할 수 있어 홀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대만과 외부 세계를 잇는 해저 통신 케이블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케이블은 태평양횡단 급속 케이블시스템의 일부로 거제에서 출발해 중국, 대만, 일본, 미국과 연결된다. 해저 케이블 훼손 의혹을 받고 있는 용의 선박은 카메룬과 탄자니아의 선적으로 소유주가 홍콩 회사로 돼있지만 해당 회사에 등재된 이사는 중국 출신 인사로 밝혀지면서 중국이 의심을 받고 있다. 대만은 이 선박의 다음 기착지인 한국에 조사 협력을 요청한 상태다. 얼마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북유럽에도 발생했고 중국 선박의 소행으로 드러난 바 있다.
세계 곳곳에서 통신 해저 케이블이 안보 격전지로 부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다만 세계 각지에서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해저 케이블 훼손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우리 안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케이블의 단절과 훼손은 물론 도청 및 복제 등 사이버 공격 위협도 받을 수 있다. 또한 물리적 형태의 '봉쇄' 방식보다 외부와의 통신 두절을 통한 '정보 봉쇄'의 여파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욱이 최저가의 복구비용을 빌미로 해저 케이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을 광범위하고 공세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국가란 점도 꺼림칙하다.
해저 케이블은 전세계 통신의 99%를 담당하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긴요한 근해 통신망과 에너지 인프라가 불순한 의도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며 비밀공격의 사보타주 행위 처벌 또한 어렵다는 점에서 '회색지대 전술'에 대한 안보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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