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2012. 8.28)[제민열린광장]이어도와 하멜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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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 지난 3월 중국은 이어도가 자국의 관할해역에 들어 있다면서 감시선과 항공기를 동원해 정기 순찰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도발의 강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일부에서는 '동북공정'에 이은 '남해공정'이라고까지 부른다. 중국은 왜 이처럼 이어도에 집착하고 있는가. \r\n무엇보다 이어도 주변에는 유전같은 해저자원 부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969년에 유엔 산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는 '동중국해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석유·천연가스의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이른바 '에머리 보고서(Emery Report)'를 발표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1970년에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서둘러 제정하고 그 시행령에 대륙붕 광구를 설정하는데, 이어도는 대륙붕 제4광구에 속한다. \r\n또 동중국해는 수심이 얕은 대륙붕으로 이뤄져 있어, 중국 칭다오의 북해 함대나 상하이의 동해 함대의 경우 이어도 해역을 거치지 않고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기가 어려워 이어도는 군사 전략적 가치도 높다. 지난 3월 24일 우리 해군은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으로부터 잠수함으로 보이는 물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신고를 받고 호위함 2척을 급파한 일이 있다. 그 이튿날 새벽에도 잠수함이 목격됐던 해상 인근에 또다시 중국 해군이어도와 하멜표류기 호위함 2척이 나타났다. 우리 군함이 다가가자 우리측 EEZ 바로 앞에서 급선회해 돌아갔다고 한다. \r\n한편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가 일본 큐슈에서 중국 상하이로 항해하다 그 사이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수중 암초에 부딪침으로써, 국제해도에는 이 영국상선의 이름을 따서 이어도를 '소코트라礁(Socotra Rock)'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다 1951년에 우리 해군과 한국산악회가, 1984년엔 KBS와 제주대학교가 이어도 탐사에 나서 이 수중 암초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r\n이러한 이어도를 중국은 '쑤옌자오(蘇暗礁)'라고 부른다. '쑤옌자오'는 소코트라礁에서 차음한 蘇(쑤)에다 暗礁(옌자오)를 붙여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880년~1990년대 청말(淸末)에 북양수사(北洋水師)의 해도에 쑤옌자오가 표기돼 있다면서 한국의 이어도 인식이 자국보다 100년 늦다고 주장하지만 이 해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r\n이런 가운데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회장 고충석)'는 최근 이어도가 표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해역의 항해도가 1653년 8월 16일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에 의해 제작됐음을 밝혀냈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하멜 일행은 대만해협을 방황하다가 태풍에 밀려 이어도 해역을 흐르는 해류를 타고 현재의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아래 바닷가 모래밭에 표착한다. 하멜의 이 항해도에 따르면, 이어도로 추정되는 곳이 'OOST'라고 표기돼 있다. 그 위치는 현재의 이어도와 일치한다. 이어도 외에는 이 해역에 섬이나 수중 암초가 없기 때문이다. \r\n제주에서 전승돼온 설화나 민요 등을 보면, 이어도는 옛날부터 해양활동을 해온 제주인들에게는 풍성한 어장이자 중국·일본 등 외부세계로 나가는 해로임을 알 수 있다. 이어도는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호흡을 함께 해 오면서 오늘날 '뿌리깊은 생활문화'로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어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법적 논리 개발뿐만 아니라, 제주의 역사·설화·민요 등을 포함한 인문·사회학적 지식의 융합 내지 통섭을 통해 이어도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의 제고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r\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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