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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 문화] 제주해양문화 유적지 소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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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45회 작성일 23-06-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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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 문화] 제주해양문화 유적지 소개 ②

             

            [이어도연구회]에서는 '해양아카데미'를 통해 제주도의 해양문화유적지를 소개하는 강의가 있습니다.

            이번 코너에서는 그 주옥같은 강의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제주도의 왜구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왜구의 침략에 노출되어 있었다. 

            3성 9진 25봉수 38연대로 구성된 방어시설을 갖추게 된 것도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3성은 행정과 군사 목적을 동시에 갖춘 비교적 큰 규모의 읍성으로 제주읍성, 정의현성(현재 성읍마을), 대정현성(현재 제주시 대정읍에 위치)에 있었다. 

            제주성은 탐라국(고려시대 이전)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정의성은 1423년(세종 5년)에 성을 쌓았으며, 대정성은 1418년(태종 18년)에 초대 대정현감인 유신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9진으로는 애월진, 명월진, 차구진, 모슬진, 서귀진, 수산진, 별방진, 조천진, 화북진이 있었다. 봉수는 산 위에 설치하여 50리 밖을 감시하였으며, 연대는 해안가에 설치하여 적의 상황을 가까이에서 감시하였다. 

            통신 방법으로는 밤에는 봉화를 쓰고,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며, 평상시에는 1개, 이상한 배가 나타나면, 2개, 우리 쪽으로 향해 오게 되면 3개, 적이 상륙하면 4개를 올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5개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만약 안개 등으로 연기나 봉화가 잘 보이지 않으면 봉수군이 달려가서 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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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삼읍전도(濟州三邑全圖, 규장각)] 

             


            조천진성과 연북정

             

            조천진은 제주도에 설치된 9개의 진성 중에서 조선 중기 왜구의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사시설 중의 하나이다. 

            조천(朝天)은 조선 초기부터 조천방호소와 조천포수전소가 있던 방어의 요충지였는데, 처음 축조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조 23년(1590년) 개축하였다. 

            고서의 기록을 통해 조천은 천자의 나라에 조회하러 나간다는 의미로 왕명을 받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고,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풍향을 관측하는 곳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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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설명] 제주삼읍전도 濟州三邑全圖, 제주도를 그린 지도로 조선시대의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1872년이 아니다. 

            大靜, 旌義 등의 고을이 縣이 아닌 郡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95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에는 연미의 가세기오름은 명악, 민오름은 문악으로 표기되어 있다. (출처: 연미문화마을)

             


            조선시대에 제주도의 선박이 출입하던 대표적인 포구는 조천포구와 화북포구이었기 때문에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진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천진성은 해발 1~2m로 완만한 경사면에 남고북저(南高北底)의 지형 위에 위치하여 있으며, 진성의 북측은 해안에 접해 있다. 

            조천진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을 장축으로 한 타원형이며, 둘레는 128m 정도이고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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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북정(戀北亭)(좌) 그리고 조천진성(우)]

             

            조천진성의 성문은 축조 당시에 동문 1문으로 되어 있었으며, 동문지가 남아있다. 

            성곽은 외벽 높이가 2.2~4.3m, 상부 폭이 1.6~3.1m이며, 축조방식은 제주도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 허튼층쌓기로 협축하여 축조하였다.

            조천진성의 남측 성벽 위에는 북녘의 한양을 바라보며 정을 기리었다는 연북정이 있다.

            연북정은 원래 조천진 바깥에 객사로 처음 축조하여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선조 23년(1590년)에 결제사 이옥이 성을 동쪽으로 돌려 쌓은 다음에 정자를 그 위에 옮겨 세운 후 ‘청산도 푸르고 녹수도 푸르러서 쌍쌍이 푸르기 떄문에 ’쌍벽정(雙碧亭)’이라 칭하였다. 

            선조 32년(1599년)에 제주 목사가 쌍벽정을 보수하고 ‘연북정(戀北亭)’이라 개칭하였다. 

            연북은 제주도에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찰관 주재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연북정은 1973년에 보수된 건물이며,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화산섬, 제주문화재탐방」광문당, 2009, p210.)

             


            https://blog.naver.com/ieodoresearchkorea/22312181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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