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의 차고스 군도(디에고 가르시아) 주권 이양 합의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해 5월 ‘기념비적 성과’라고 지지했던 태도를 180도 뒤바꾼 것이다. 이처럼 돌발적인 유턴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전략적 가치, 중국·러시아 변수, 주민 의사 배제 논란 등이 겹치면서 주권·안보·동맹을 둘러싼 구조적 갈등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양 한복판에 위치한 ‘디에고 가르시아’는 여의도의 약 3배, 울릉도의 약 3분의1 크기인 작은 섬(약 27㎢)이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동해안으로부터 중동~남아시아~동남아까지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불침(不沈) 항공모함’으로 비유될 만큼 군사적·지정학적 가치가 크다. 미국에는 글로벌 군사태세를 지탱하는 핵심 거점이다.
실제로 디에고 가르시아에는 평시 3000~5000명에 달하는 미군과 지원 인력이 주둔하면서 인도양 전역과 페르시아만 일대 작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섬은 주변에 다른 대규모 군사기지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독보적인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미 공군 폭격기부터 해군 함정까지 장거리 전력을 신속히 투사할 수 있는 발진 거점이기도 하다.
디에고 가르시아, 미군의 핵심 군사 거점
냉전 시기 소련 견제부터 1991년 걸프전과 2001년 아프간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 섬을 후방 거점으로 삼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원거리 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디에고 가르시아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한 미국의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의 린치핀으로, 오늘날 신냉전 시대의 미·중 전략경쟁 구도하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기지는 동맹국 영토임에도 미국이 사실상 직접 운영한다는 점에서 비교 불가의 안정성을 확보한다. 이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지속적인 미군기지 반대 여론이나 중동 미군기지들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확연히 대비된다. 이런 환경이야말로 디에고 가르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아울러 인도양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고립은 적성국의 근접 정찰, 지속 감시, 기습 위협 등으로부터 상당한 완충 역할을 제공하며, 미군 전력이 은밀히 집결할 수 있는 일종의 ‘공간적 성역’이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60여개 섬으로 이뤄진 차베스 군도 중에서 제일 큰 섬이다. 지난해 5월 22일 정상 간 서명한 조약의 골자는 “모리셔스가 차고스 군도의 주권을 획득하되,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향후 99년간 영국이 임차하는 형태로 특별 관리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124년까지 영국이 디에고 가르시아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보유하며, 미·영 양국 군은 현행과 동일하게 주둔 및 기지 운영을 지속할 수 있다. 아울러 초기 99년 임대기간 만료 2년 전까지 양국 합의 시 최대 40년을 1회에 한해 연장할 수 있는 옵션도 명시되었다. 이로써 영국은 조약상 최장 139년간 디에고 가르시아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완전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공식적으로 자인하게 되었다. 특히 관할권이 모리셔스로 이전됨에 따라 기지 운영 관련 공동위원회가 설치되며, 모리셔스는 이 위원회에서 발언권과 일정 수준의 감독권을 행사하게 된다.
영국은 조약을 통해 당면한 국제법적 열세(유엔 회원국의 대부분이 기지 반환에 찬성)를 만회하고 기지의 합법성을 확보했으나, ‘임대’라는 형식에는 본질적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19세기 홍콩이 그러했듯 99년이라는 기간에는 일몰시한이 존재하며, 다음 세기에서 기지 유지 문제가 재차 부상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임대료 명목으로 영국이 매년 1억100만파운드(약 1700억원)를 모리셔스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는데, 조약 패키지에 따라 영국이 99년간 지급할 총액은 현재 가치로 34억파운드(약 5조6000억원)에 이른다. 야당인 보수당에서는 이를 “굴욕적인 임대료 헌납”이라 공격한다.

중국 변수와 인도양에서 ‘회색지대’ 경쟁
중국은 인도양에서 전통적인 해군력 투사보다는 비군사적 방식의 거점 확장 전략을 펼쳐 왔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하에 인도양 연안을 따라 항만·인프라 투자를 광범위하게 전개하며 경제적 영향력을 군사적 입지 제고의 수단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7년 중국이 최초로 개설한 해외 군사기지인 아프리카 지부티는 표면상 ‘해적퇴치 작전 지원’의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나, 배후에는 ‘인도양 진출 교두보 구축’이라는 전략이 깔려 있다. 또한 중국 해군 함정과 정보함들은 평상시 해적퇴치나 해양조사를 명분으로 인도양을 종횡으로 누비며, 역내 국가들과의 연합훈련, 친선 방문 등을 통해 존재감을 드높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은 중국이 회색지대 전략, 즉 군사·민간의 경계를 교묘히 활용하는 방식으로 인도양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외교부는 인도양의 군소 도서국들에 통 큰 개발원조와 차관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필요시 해당국의 영토에 위성항법 기지, 통신망 인프라 등을 설치하여 정보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비군사 거점들이 누적됨에 따라 중국은 인도양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먹듯, 미국·영국 등 전통적 해양강국들의 세력권을 조용히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중국의 인도양 전략은 군사기지를 노골적으로 건설하기보다는 경제력·기술력을 앞세운 거점 포섭으로 요약되며, 이는 서방과 인도의 경계심을 자극하여 인도양에서도 신냉전적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모리셔스도 이런 중국의 지원하에 발전해나갔다. 모리셔스는 마다가스카르 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인구 약 130만의 섬나라다. 차고스 군도는 1968년 독립 직전까지 이 나라의 속령이었다. 모리셔스는 전통적으로 영국·프랑스·인도에 우호적인 소국이었지만, 최근 수십 년간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2019년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체결한 이후, 모리셔스는 중국 자본의 아프리카 관문 역할을 떠맡으며 금융센터와 부동산 개발 등에 중국 자금을 적극 끌어들였다. 그 결과 모리셔스의 대중 교역 비중이 빠르게 늘었고, 중국은 인도양 도서국들 가운데 모리셔스에 가장 견고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일례로 포트루이스 항만 확장, 산업단지 건설, 정부청사 신축 등 굵직한 사업들에 중국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었고, 이는 모리셔스 엘리트 계층의 친중 성향을 강화시켰다. 경제적 밀착은 자연스레 정치적·외교적 영향력으로 연결됐다. 모리셔스는 국제무대에서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해왔으나, 중국이 떨떠름하게 여기는 이슈(대만,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해서는 우호적 중립 또는 침묵으로 대응했다. 이런 배경에서 영국 보수당 지도부는 “모리셔스가 공공연히 중국과 러시아에 밀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차고스 협정으로 영국이 중국 영향권에 포섭된 국가에 영토를 내어준 셈이라고 성토했다.
모리셔스와 중국의 밀착
실제로 이번 차고스 협정 협상과정에서 모리셔스는 중국과 긴밀히 정보를 공유했고, 국제사법재판소(ICJ) 등 국제법적 투쟁에서도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향후 모리셔스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대변하는 ‘프록시(proxy)’ 역할을 떠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으로서도 모리셔스를 내세워 미국·영국과 기지 사용 조건을 교섭하거나, 기지 운영에 제약을 가하는 조건들을 끌어낼 수 있다. 예컨대 모리셔스가 ‘자국 주권’을 이유로 디에고 가르시아에서의 특정 군사활동(정찰비행, 정보수집 등)을 제한하려 한다면, 그 배후에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부터 의심해야 할 것이다. 영국이 모리셔스에 차고스 군도를 반환한 데에는 1960~1970년대 차고스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역사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식민지배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모리셔스에 주권을 돌려주는 것이 “식민지배의 마지막 상처를 치유하는 정의”라는 국제 여론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영국 보수진영과 미국 보수층은 차고스 협정을 “자학적 결정”이라고 맹비난하며, “식민주의 죄책감 때문에 안보를 희생시키는 자충수”라고 주장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진영을 중심으로 “식민지 문제는 과거사일 뿐, 오늘의 현실은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미 공화당 상원 의원들은 차고스 반환을 “중국에 날개를 달아주는 전략적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헤리티지재단 등 보수 싱크탱크는 미국·영국 정부가 탈식민 여론에 휘둘려 스스로 안보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영국·모리셔스 협상을 지지한 쪽에서는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영토를 계속 점유하면 오히려 중국에 구실을 줄 뿐”이라며 서방이 규범 준수와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탈식민 담론(가치)’ 대 ‘국가안보 우선(이익)’ 논쟁은 서방 진영 내부의 근본적 견해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차고스 사안을 둘러싼 논란은 가치·이익 균형의 모색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이는 신냉전 시대 서방이 직면한 딜레마기도 하다.
디에고 가르시아와 그린란드의 공통점
차고스 군도의 디에고 가르시아와 북극권의 그린란드는 지리적으로는 반대편에 있지만, 미국의 안보전략상 놀라운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두 지역 모두 미국이 냉전 시기부터 핵심 전진기지로 활용해온 지역으로, 하나는 인도양, 다른 하나는 북대서양·북극해 방면을 커버하는 전략 요충지다. 디에고 가르시아가 인도양에서 ‘불침 항공모함’라면, 그린란드는 북대서양에서 ‘부동(얼지 않는) 항공모함’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심해 항구와 장거리 활주로를 갖춘 이들 기지는 미 해·공군의 범세계적 기동성을 보장하는 핵심적 군사 인프라이다.
두 지역은 또한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외세에 종속된 식민지 유산”이라는 점에서 민감한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다. 디에고 가르시아에서는 차고스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 역사가, 그린란드에서는 덴마크 식민통치와 미군 주둔으로 인한 토착 이누이트 사회의 해체가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미국의 전략 커뮤니티에서는 그린란드와 디에고 가르시아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견해가 뚜렷하다.
두 지역 모두 중국이 집요하게 경제적 접근을 시도해 왔다는 점도 유사하다. 중국은 그린란드의 희토류 광산 개발과 공항 건설 등에 투자를 제안하며 영향력 확대를 꾀했고, 디에고 가르시아의 경우에는 ‘차고스 협정’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세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미 국방 전문가들은 그린란드와 디에고 가르시아를 잇달아 상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하나는 북극항로~대서양, 다른 하나는 인도양~중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두 개의 거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신냉전 시대 미 군사전략의 생명줄이다. 영국과 덴마크 입장에서도 두 지역은 동맹 차원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여 다뤄야 할 민감한 자산이다. 결과적으로 디에고 가르시아와 그린란드는 ‘동맹의 전략자산’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해당 자산의 양도나 매각을 둘러싼 논쟁은 동맹 내부의 신뢰와 전략계획에 중대한 파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자본 침투와 인프라 잠식은 안보 공백을 파고드는 비군사적 위협으로서 미국의 통합억제 전략에 심각한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 미국은 동맹국의 영토 관할권 변화가 글로벌 해양 통제권에 미칠 균열을 차단하기 위해, 보다 다각적인 안보 공약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병행해야 할 시점이다.
디에고 가르시아 영유권 포기한 英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정부가 디에고 가르시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 지난해 5월에 보였던 호의적 평가를 뒤집고, “서방 안보 질서에 대한 자해행위”라며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트럼프의 분노가 증폭된 이유는 영국이 이러한 중대 결정을 미국과 충분한 전략적 조율 없이 추진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는 디에고 가르시아의 법적 지위 변화가 미군 기지 운영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 군사 계획에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트럼프가 이 합의를 “어리석은 행동(act of stupidity)”이라고까지 맹비난한 것은 공개적 질책에 가깝다. 영국을 향한 불만 표출을 넘어, 동맹국이 공유해야 할 전략적 기준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트럼프의 분노는 ‘동맹 신뢰’라는 것이 선언적 규범이 아니라 실질적 안보 기여를 통해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로써 차고스 문제는 미·영 동맹관계의 신뢰를 시험하는 계기로 전환되었다.
‘회색지대 전략’이 특별히 위험한 이유는 전통적 억제 논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적 도발에는 군사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FTA 체결이나 인프라 투자, 국제법적 자문 등은 제재나 보복의 명분이 되지 않는다. 서방이 규범 준수와 도덕적 의무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규범의 테두리 속에서 적대국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된다. 차고스 사례에서 중국은 탈식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명분으로 삼아, 서방 스스로가 전략자산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군사력의 균형보다 담론의 균형이 전략적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회색지대에서의 경쟁 문법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차고스 사례는 한국이 직면한 회색지대 위협의 심각성을 환기시킨다. 중국은 이미 우리를 대상으로 경제적 압박(사드 보복), 역사·영토 담론 공세(이어도, 동북공정), 여론전·인지전, 서해 구조물 설치 등을 복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차고스의 교훈을 통해 회색지대 경쟁이 전쟁터가 아닌 법정, 시장, 담론 공간에서 먼저 승패가 결정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경제전·정보전·법률전 역량을 통합하여 복원탄력성을 갖춘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영국은 탈식민주의라는 ‘도덕적 올바름’에 도취되어 금쪽같은 전략자산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 공백은 국제법적 정의가 아니라 중국의 공세적 영향력이 메울 것이다. 한국은 이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출처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48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