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20% 통행료’ 현실화되면... 한국, 年 최대 17조원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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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 화물 가치의 20%를 ‘안전보장 비용’ 명목으로 받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해운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에 사실상 통행료를 물리겠다는 구상으로, 현실화될 경우 중동산 원유와 가스를 들여오는 한국 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주장에 맞서 미국이 해협 통항 안전을 보장하겠다면서, 그 대가로 해당 해역을 지나는 선박 화물 가치의 20%를 미국이 보전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 역할을 하겠다는 표현도 썼다. 그간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화해 자유로운 항행을 방해한다고 비판해 왔는데, 정작 미국이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초고율 통행료를 거론한 셈이다.
국내 해운업계에서는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200만배럴 안팎의 원유를 싣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현재 유가와 환율을 감안할 때 해협 한 차례 통항에 20% 부담금이 400억~500억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의 전체 통행료는 최대 17조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의 영업이익률을 감안하면 한 번 운항할 때마다 수백억원을 추가로 내는 구조는 사업성이 성립하기 어렵다”며 “화주에게 비용을 전가하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규모”라고 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통항료는 과거 이란이 거론한 호르무즈 해협 통항 비용보다 최대 16배 비싼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란은 미국과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국제법상 공해에서 직접 통행세를 부과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식해, 지정 항로를 벗어날 경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별도 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우회적 비용 부담을 압박한 적이 있다. 당시 업계에서 거론된 비용은 한 해 약 1조 700억원 가량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20% 부담금은 이보다 15배가 넘는 훨씬 큰 규모다. 한 선사 관계자는 “이란이 요구했던 비용도 부담스럽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화물 가치의 20%는 통행료라기보다 운송 포기 압박에 가깝다”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가스 수출이 집중되는 해상 요충지다. 한국은 원유와 LNG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호르무즈 통항 비용이 급등하면 정유·석유화학·발전·해운업계 전반으로 충격이 번질 수 있다. 선사들이 부담금을 운임에 반영하고, 화주가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류비 급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실화될 경우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용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제 시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문제를 둘러싸고 강경 발언을 내놓은 뒤 협상 과정에서 수위를 조절한 사례가 적지 않은 데다, 화물 가치의 20%를 미국이 어떤 법적 근거로 징수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한해운협회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특성상 실제 제도화 여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며 “만약 미국이 강행할 경우 국제해사기구(IMO), 국제해운회의소(ICS), 아시아선주협회(ASA) 등 국제 해운단체들과 공조해 반대 의견을 내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와 가스뿐 아니라 글로벌 해운 보험료와 운임 전체에 영향을 주는 핵심 항로”라며 “통행료 논의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미국과 이란이 해협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선박 보험료와 운항 리스크가 크게 뛸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날 국제유가는 10% 가까이 급등했다.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중 83.54달러까지 오르며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직전인 지난달 16일 이후 약 한 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끝에, 전날보다 9.6% 오른 배럴당 83.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8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종가는 배럴당 78.14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9.4% 올랐다.
해운업계에서는 이번 발언을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의 호르무즈 우회 수출망 확충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부 원유를 수출하고 있고, UAE도 호르무즈 해협 안쪽을 거치지 않는 푸자이라항을 활용해 원유를 내보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산유국들이 파이프라인 증설과 대체 항만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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