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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도로 가는 배, 점에서 나서 점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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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7-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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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념전

            지난 2013년 6월 8일은 변시지 화백(1926~2013)이 고이 잠든 날이다. 어느덧 13년, 세월은 해류를 따라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 것은 그의 생년 1926년이다. 2026년 올해가 변시지 화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렇게 세월은 왔다. 오면 가고, 가면 오는 것이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것에서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삶은 늘 우리를 속인다. 화가에게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돈과 명예 중 최선은 그가 남긴 미학, 이 세상에 지고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래서 비록 사람은 없더라도 그의 예술은 오래 남기에 인생보다 예술이 길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전에 변시지 화백은 "아무나 화가라는 말을 써서 안 된다"라고 말했다. 화가(예술가)에게는 그 이름에 걸맞게 끝까지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전에는 기념하기를 바라고, 돌아가서는 기념되기를 바란다. 이왈종 화백은 한 마디로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했다. 


            서귀포공립기당미술관에서는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명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황토빛 사유, 존재의 바람」이다. 기간은 올해 6월 23일부터 9월 27일까지이며, 회화 60점 중 미공개작 23점과 아카이브자료 20여점 등 총 8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오늘 화백은 떠나고 없지만 그의 예술의 바람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불어온다. 문득 두보(杜甫)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뜬구름 종일토록 오고가건만, 나그네 그대는 내내 오지 않더라(浮雲終日行 遊子久不至)"

            △예술, 아주 특별한 아우라

            어떤 화가라도 한 공간에 살면서 경험했다면 그 공간 특유의 감성이 스며든 작품에서는 특별한 아우라가 풍긴다. 한 마디로 아우라란 정신적인 에너지이며, 곧 화가의 작품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라는 화가마다 강도(强度)가 다를지라도 색채와 선(線), 형태가 만들어낸 앙상블로서의 작품이야말로 직관이 객관화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아우라를 미학적인 개념으로 쓰는 대신 유사 과학적인 의미에서, 미약한 전기에너지나 인간의 육체(또는 각 기관)에서 방출되는 빛으로 생각해 개체들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았다. 미학의 개념으로 아우라(Aura)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인데 개체로서의 작품에도 작가 특유의 원본(原本)이 뿜어내는 에너지, 즉 진품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를 아우라라고 말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복제 기술 발달에 따른 사진의 엄습은 원본성(原本性, Originality)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대량 소비되는 우리 시대에 오히려 더욱 원본(진품)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우라는 어떤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헤겔이 예술은 '정신활동의 산물'이라는 말과 유사하다. 


            아우라의 특성이 사물 자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에너지라면 그 사물에는 고유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고유성을 '~답다'라고 말한다. 감귤(사물)을 보지 않고도 향기(원본 분위기)로 감귤을 알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감귤은 원본이며 감귤 향기는 아우라이고 감귤답다는 말은 곧 감귤이라는 말이 된다. 사전에서 '답다'라는 말은 명사 아래 붙어 그 명사가 지니는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뜻의 형용사를 이루는 접미사이다. 제주에서 '답이다'라는 말은 '같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제주다움'은 '제주와 같다'라는 것이다. 


            제주다운 그림이란 제주를 잘 표현한 회화를 말한다. 이런 작품을 필자는 일찍이 제주화(濟州畵)라고 부른 적 있다. 글로컬 시대에 제주화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데 철학적 측면에서 보면 세계의 주최로써 제주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서양화의 역사가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오히려 그 유럽의 물질문명 세계와 세계관을 재해석해 동양·한국·제주의 관점으로 다시 세우고, 역으로 그 결과물인 제주화(濟州畵)를 글로벌하게 구축해야 한다. 글로컬리즘이란 로컬 미학도 세계 미학의 한 갈래가 돼야 하는 지점을 말한다. 즉 글로컬리즘은 글로벌(세계)과 로컬(지역)을 연결시켜 역세계화로 지역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존속·계승·발전시키려는 태도이자 방법론이다. 지역의 문화예술 생산성을 독자적인 고유성을 가지고 연대함으로써 세계와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100주년에 변시지를 회고한다 

            변시지는 제주도 서귀포 출신으로 1926년 5월 29일 서홍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 조상은 고려의 무장(武將)으로써 명신(名臣)이었던 변안렬(邊安烈)의 후손이다. 변시지는 아홉 명의 자녀 중 4남으로 태어나 유아 시절 바다와 섬을 내려다 보면서 자랐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제주인이 됐지만 이미 오사카에서 고무공장을 경영하는 큰형님 덕분에 거기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변시지는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과(1942~1945)를 졸업하고 도쿄에 가서 일본 근대 서양화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외광파의 선구자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1866~1924)의 백마회 연구소 제자였던 데라우치 만지로(寺內萬治郞, 1890~1964)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 시기 이후 한동안 아테네 프랑세즈에 입학해 불어를 배웠다. 변시지가 광풍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순전히 데라우치 만지로 덕분이었다. 데라우치 만지로는 1916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화단의 중견으로 대우를 받으며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제23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와 광풍회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변시지의 인물화는 데라우치 만지로 화풍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 한편 오사카미술학교 출신 제주 화가로는 송영옥(1941년 입학~1946년 졸업)과 양인옥(1942년 입학~1947년 졸업), 윤재호, 임호, 백영수 등이 있다. 당시 오사카미술학교 교수로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사이토 요리(齋藤與里, 1885~1959) 등이 인상주의 회화를 가르쳤다. 변시지 화풍의 영향은 송진파(松津派)와 보라파의 두 영향이 뚜렷하게 보인다. 송진파는 갈색을 많이 사용하는 구세대 서양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마치 나무에서 나오는 액체처럼 끈끈하다고 해 송진파라고 했는데 이들은 구파(舊派), 혹은 북파(北派)라고도 불렀다. 이와 달리 밝은 빛을 이용하는 외광파는 색조가 밝고, 특히 어두운 부분에도 보라색이나 청색을 사용하는 보라파를 일러 자파(紫派), 혹은 신파(新派)라고 하거나 남파(南派)라고 불렀다. 변시지의 졸업 후 작품에 나타나는 송진파의 요소가 후에 데라우치 만지로를 만나고 나서는 이 둘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송진파의 영향은 본격적으로 변시지의 제주 시대에 다시 등장한다. 특히 인물화 포즈나 색조의 분위기에서는 데라우치 만지로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광풍회라는 이름은 옛 백마회(白馬會)에서 발간했던 기관지가 「광풍(光風)」이었는데 처음 그 말을 쓴 단체가 백엽회(白葉會)라는 이름으로 오래전에 사용하고 있다가 다시 북두회(北斗會)로 고치는 바람에 우연히 '광풍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 광풍회는 1912년(메이지 45) 6월에 창립했다. 광풍회는 구로다 세이키의 백마회 후신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실제로 백마회의 재산 일부를 받았기 때문에 백마회의 실질적인 계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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